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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제국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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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스

| 지면서비스
  • [송호근 칼럼] 한국사학자 카이텐

    [송호근 칼럼] 한국사학자 카이텐 유료

    ... 민족주의를 경계하지만, 그의 논조는 2015년 일본 현지 대담에서 자위대 참모총장 다모카미 도시오(田母神俊雄)가 뱉은 그것이었다(이 다큐멘터리는 KBS에서 방영됨). 도시오는 포효했다. '당신이 경성제국대학 교수인 것은 대일본제국의 은혜다.' 필자가 꾹 참고 물었다. “위안부는?” “돈벌이 매춘이다.” “그럼 징용은?” “그걸로 먹고 살았다.” 놀라지 마시기를. 이 책에 그대로 쓰여 있다. '위안부는 ...
  • 왜 그들은 붓을 놓았나…미완의 화가를 만나다

    왜 그들은 붓을 놓았나…미완의 화가를 만나다 유료

    ... 놓았다. 정찬영은 평양 서문여고를 졸업하고, 여학교 교사로 활동하다가 1926년 당대 저명한 수묵채색화가였던 이영일 밑에서 그림 수업을 받았다. 1929년 조선민술전람회에 입선했고, 1930년 제국대학 약학대학 출신의 경성약학전문학교(서울대 약학대학 전신) 교수인 식물학자 도봉섭(1904~?)과 결혼했다. 처음엔 결혼 이후에도 그림을 그렸고, 1935년까지 각종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다. ...
  • [중앙일보·네이버 공동기획] 468g 초미숙아까지, 16년간 1만 명 신생아 살렸다

    [중앙일보·네이버 공동기획] 468g 초미숙아까지, 16년간 1만 명 신생아 살렸다 유료

    ... 하나로의료재단 고문으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중학교 졸업식 날 가족사진. [사진 피수영] 1943년생이면 해방되기 2년 전에 태어났다. “서울 종로 청진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경성제국대학 예과(현 서울대 사범대) 교수라 해방 후에는 중구 장충동에 있는 사택에서 살았다. 45년 8월 15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가 나를 발가벗겨서 옷 대신 온몸에 태극기를 두른 채 목말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