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preLoad Image preLoad Image
검색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주요 기사 바로가기
다른 기사, 광고영역 바로가기
중앙일보 사이트맵 바로가기
닫기
닫기

고르바초프 소련

통합 검색 결과

뉴스

조인스

| 지면서비스
  • [배명복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트럼프의 INF조약 파기는 미·중 신냉전 신호탄

    [배명복 대기자의 퍼스펙티브] 트럼프의 INF조약 파기는 미·중 신냉전 신호탄 유료

    ... 미사일 경쟁 그래픽=최종윤 yanjj@joongang.co.kr 미·소 냉전은 1991년 소련의 몰락으로 막을 내렸다. 훗날 역사가들은 2019년을 '제2의 냉전'이 시작된 해로 기록할 ... 중·단거리 미사일 폐기에 관한 조약'이다.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해 이듬해 6월 발효된 이 조약은 재래식 또는 핵 탄두를 장착할 수 ...
  • [아탈리 칼럼] 시위 이후를 생각한다

    [아탈리 칼럼] 시위 이후를 생각한다 유료

    ... 경우에 그것이 의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발생한 경우라고 해도 시위의 성공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무엇보다도 독재를 무너뜨리는 것은 시위가 아니었다는 역사적 교훈을 기억해야 한다. 소련의 운명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대중들의 시위가 아닌 지도자 고르바초프의 결단이었다. 히틀러의 독재를 종식한 것도 시위가 아닌 당시 동맹국들이었다. 또한 시위 또는 외국 군대의 힘으로 독재가 ...
  • [남정호의 시시각각] '참사' 하노이 북·미 회담 뒤집기

    [남정호의 시시각각] '참사' 하노이 북·미 회담 뒤집기 유료

    ... 꼴이 났다”는 분석이 세계 언론에서 쏟아졌다. 졸지에 화두가 된 이 회담은 1986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역사적 담판이다. 주인공은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 핵 감축을 다룬 이 회담은 사전 합의가 없었던 것이나 타결에 실패한 점 등 곳곳에서 이번 하노이 회동을 빼닮았다. 사전 합의가 빠진 건 급조된 탓이었다. “핵 감축을 위해 만나자”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