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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통합 검색 결과

인물

유성룡
(劉成龍 / YOO,SUNG-RYONG)
출생년도 1943년
직업 교육인
소속기관 [現] 경기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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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조인스

| 지면서비스
  • [이정민의 시선] 지금 우리에게 유성룡이 있는가

    [이정민의 시선] 지금 우리에게 유성룡이 있는가 유료

    이정민 논설위원 『징비록(懲毖錄)』의 저자 유성룡은 임진왜란 7년 전쟁을 총지휘한 사실상의 사령탑이었다. 육상의 권율, 해상의 이순신 두 장수를 천거함으로써 풍전등화의 위기에서 조선을 ... 물러나고 세자(광해군)에게 왕위를 물려주라고 압박했다. 조선을 직할통치하려는 속셈이었다. 선조는 유성룡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격장군 척금에게 양위의 글을 전한다. 그날 저녁, 척금의 거처를 찾아간 ...
  • [박정호의 문화난장] '귀신폭탄' 비격진천뢰, 그 찬란한 슬픔

    [박정호의 문화난장] '귀신폭탄' 비격진천뢰, 그 찬란한 슬픔 유료

    ... 맏형쯤 된다. 경주성·진주성·행주산성 등 많은 전장에 사용됐다. 조선 산하를 무주공산처럼 린했던 왜군도 생전 보지 못한 첨단무기에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조선시대 비밀병기인 비격진천뢰 ... 비격진천뢰는 '귀신폭탄'이라 불렸다. 실제 기록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임진왜란의 과오를 거울 삼은 유성룡의 『징비록』을 보면 “땅에 떨어졌다가 한참 있다 폭발하는 것인데, 왜군들이 가장 두려워했다. ...
  • [최훈 칼럼] 그런데 배는 왜 12척만 남았을까

    [최훈 칼럼] 그런데 배는 왜 12척만 남았을까 유료

    ... 선조에게 채택된 건 당시 집권세력이 동인인 구도와 무관치 않다. 왜침 없다던 조선의 분위기가 유성룡의 『징비록』에 묘사된다. “이 태평한 시대에 성을 쌓으라니 무슨 당치 않은 일이오”라는 민초들 ... 그나마 문서상의 무기가 상당수였다. “부산 함락에 황급히 소집된 병사란 게 옆에 책을 낀 채의 생, 두건 쓰고 나온 아전 등이었다”고 서애는 기록했다. 국경인 의주까지 피란 간 선조가 할 ...